배우 정한용 국회의원 뒷이야기 및 부인 이혼

 

 

'인생다큐-마이웨이'에 탤런트 정한용이 출연하네요.

정한용은 데뷔 41년 차 배우이자 정치, 사업 이력을 갖고 있고 국회의원 경력으로도 유명하죠.

 

또한 그동안 방송을 통해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정한용 부인 전혜선씨와 아픈 가족사를 

'마이웨이' 방송을 통해 공개합니다.

 

'인생다큐-마이웨이' 방송에서 정한용은 배우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화도 전했는데요.

정한용 - “우연히 친구 따라갔던 공채 탤런트 시험에 덜컥 합격해 데뷔했다” “마침 방송국에서 ‘가장 배우처럼 안 생긴 사람’을 뽑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외모였던 내가 합격했다”

 

탤런트 정한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영화배우 겸 탤런트 정한용 프로필을 간략히 보자면,

정한용 나이. 생년월일 1954년6월22일생으로 올해 나이 66세

정한용 고향. 충청북도 충주시 출생입니다.

정한용 학력. 서울교육대부설초-경기중-경기고 졸업.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중앙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언론학 석사.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 매스미디어학과 언론학 석사. 미국 뉴저지 주립 러트거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정한용 경력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소속정당 국민회의)

 

 

정한용의 어머니가 정한용을 낳기 전에 2번이나 유산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부족함없는 부유한 집안의 종손 외아들로 태어나 부모님, 친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정한용은 어린시절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부모님이 다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귀한 종손 외아들이라 집안 어른들이 마냥 예뻐하며 키우다보니 버르장머리 없이 컸던 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명문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제학과에 들어간걸 보면 정한용이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했던거 같습니다.

정한용은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면서, 연기력을 갈고 닦습니다.

 

그가 대학 재학 시절이었던 1978년과 1979년 전국대학연극축전에서 우수연기상과 최우수연기상을 연달아 수상할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연기력은 인정받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79년 TBC(동양방송) 탤런트 공채에 합격하며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는데요. 그 전해인 1978년에 연극배우로 첫 데뷔한바도 있습니다.

 

 

 

 

 

 

 

 

 

 

정한용 - "드라마에 출연안해도 수습기간에는 월급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탤런트 시험에 응모했어요."

당시 남자탤런트들은 노주현, 한진희처럼 잘생긴 배우들이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정한용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연기력 하나만으로 1980년 드라마 <욕망>의 주인공으로 발탁이 됩니다.[정한용 장미희 욕망]

 

정한용 - “데뷔와 동시에 당시 최고의 여배우 장미희와 드라마 <욕망>(1980)의 주연이 됐다”고 밝히며 “처음이라 조연 역할이나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주인공을 맡으라고 하니 나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한용 - "당시에 TV카메라도 처음 구경하는데다 상대 여배우인 장미희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내가 생각해도) 연기를 너무 못했다."

 

 

정한용 - "나는 어리버리 그 자체였다. 첫 촬영에서 상대 여배우였던 장미희가 "헤어질 수 없다"라고 대사를 하면서 실제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라. 신인 배우였던 나는 그녀의 연기력에 당황하고 말았다."

정한용 - "그래도 선배들 덕분에 드라마에 계속 출연했지만, '내가 이 얼굴 갖고 계속 배우를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어서 결국 방송 구성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데뷔 하자마자 주연을 맡고, 더구나 상대 배역이 당대 최고 여배우 장미희였다니,,, 정한용의 부담감과 연기 스트레스, 압박이 엄청났을거 같습니다. 오죽하면 배우 직업을 포기하고 전직을 하려했을까요....;;

 


참고로 당시 정한용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장미희 상대역으로 캐스팅된데에는 정한용의 연기력도 있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동경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자 배우와 무명의 남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서 (남자) 시청자들의 로망을 대리만족하도록 만든 것인데, 한국에서도 이를 참고해서 드라마 캐스팅을 한 것이죠. 정한용은 운도 참 좋았던거 같습니다.

 

이후 정한용은 '젊음의 행진' 구성작가로 1년 정도 일하다가, 드라마 '보통 사람들'에 캐스팅되어서 금보라와 호흡을 맞추게 되는데, 이 드라마에서 정한용은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다른 미남배우들보다 못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방송 사상 최초로 '앞치마 입은 가정적인 남자'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일등 신랑감' 이미지를 쌓게 된 것이죠.

 

정한용 - "당시에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는 나였지만, ‘연애하고 싶은 남자 1위’는 항상 (동료 배우) 강석우 씨가 선정됐다. 강석우의 벽은 도저히 깰 수가 없더라."

 

 

 

 

 

 

 

 

 

 

 

정한용 -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저처럼 못생긴 배우도 필요하잖아요."

정한용 - "사실 드라마 '보통사람들' 하나만 끝나면 (일반 기업체에) 취직하려고 했는데, 그 드라마가 (높은 인기로) 3년이나 하는 바람에 (기업체의) 연령제한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탤런트로 남게 되었다."

 

이후 정한용은 드라마 '욕망의 문', '옛날의 금잔디', '사랑의 찬가', '하얀 거탑', '프레지던트', '황금의 제국', '당신만이 내사랑', '태양의 도시' 등과 영화 '외인들', '13월의 연정', '인간시장3', 'R2B 리턴투베이스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배우 활동을 합니다.

 

결혼 이후에도 정한용은 계속 탤런트 생활을 했는데, 사실 그는 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한용 - "연예인도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늘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죠."

 

정한용 김대중, 정한용 국회의원

 

그리고 1992년 대선에서 정한용이 김대중 당시 후보를 공개 지지하게 됩니다.
TV에 찬조 연설을 하기도 했죠  (연예인중에서 유일한 김대중에 대한 공식 TV 찬조 연설임).

 

정한용 - "제가 연설원으로 나서기 전에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1995년 공식 직책)과 밥 한끼 먹은 인연도 없었어요. 다만 제가 평소 훌륭한 정치인으로 흠모하고 있었죠(그래서 찬조 연설원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김대중은 1992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정한용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정한용 뉴욕대학교 매스컴학과 석사 과정).

 

정한용 - "늘 배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어요. 연기는 소모적인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국으로 갔어요."

정한용 - "외부로부터 방송 중단 압력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기 전부터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1992년 대선 이후에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는데, 시기가 묘해 오해를 부른 것 같네요."

 

 

 

 

 

 

 

 

 

 

미국 유학 이후 탤런트 활동을 재개한 정한용은 제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됩니다.[정한용 국회의원]

정한용 -  "1992년 대통령 선거를 도왔을 때부터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광명시 보궐 선거 출마를 권하셨어요. 그리고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낙선하신 후,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저한테 또 (국회의원) 출마를 권하시더라고요."

 

정한용 -  "제가 바깥에서 도와드리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여쭤보니까 당(국민회의)을 새로 만들어서 (정계에) 복귀해야 할 때이니, 제가 국회의원이 돼서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정한용 - "사실 제가 정치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지만, 국회의원은 사실 좀 엉겁결에 한 거죠."

 

 

 

 

정한용은 국회의원 당선 후 초선의원치고는 비교적 의정 활동을 잘 수행합니다.

탤런트 정한용은 김대중과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정한용을 국회의원으로, 정치인으로 만든 것이 김대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무난한 의정활동, 높은 인지도, 김대중의 신임을 바탕으로 '동교동계의 황태자'라고 불리기도 합다.[정한용 김대중]

 

정한용 - "국회의원 시절 당 선배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대선을 도와준 당 선배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리를 요구했다. 그래서 내가 이에 대한 충고를 하니 그 선배들과 멀어지게 되더라."

정한용 - "입바른 소리하다 동교동계 눈밖에 나고 사이가 틀어졌다. 탈당 후 밤새도록 울었다."[정한용 탈당 이유]

 

 

그렇게해서 정한용은 2000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를 탈당해서 자민련에 입당하게 됩니다.

정한용 - "당이 개혁에 대한 원칙이나 뚜렷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나에 대한) 공천배제설을 흘리는 등 정치 신의를 저버리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당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 탈당을 결심하게 됐다."

 

결국 '동교동계의 황태자'에서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정한용은 제 16대 총선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게 됩니다.

 

 

 

정한용 - "연기를 할 때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치를 한 뒤부터 저를 욕하는 사람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도 제가 싫어서 욕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제가 속한 정당의 대표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저를 욕했다 칭찬했다 하는 거죠."

정한용 -"전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싶어서 정치를 한 것이지, 욕을 먹으려고 한게 아니거든요."

이렇게해서 정한용은 정치가로서의 행보를 접고 정계은퇴를 하게됩니다.

 

이후 정한용은 정계에서 물러나 2003년에 SBS 일일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를 통해 배우로 다시 복귀했는데요. 

같은 시기에는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도 출연했습니다. '천국의 계단'에 출연한 이후에는 평소에 그가 보여 준 배역 이미지와 정반대인, 전혀 안 어울릴 법한 건달 스타일의 배역을 몇 차례 맡았습니다.

 

정한용 부인 전혜선, 정한용 이혼설

 

1985년 정한용이 결혼하게 되는데, 정한용 부인 전혜선 집안이 보수적인 공무원 집안이었습니다.

정한용과 부인 전혜선은 양가 어머님들이 맺어줬다고 하는데요.

 

정한용 - "장모님하고 저희 어머님하고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두 분 고향이) 만주에요"

정한용 장모님 - "네 아들(정한용)이 배우라 장가도 못가고, 우리 딸(정한용 부인)도 악기하는데, 우리 딸(정한용 부인 전혜선)이 네 아들(정한용)이 좋다고 그러니까 한번 보게 하자"

정한용 - "(아내의) 성격이 좋아 보였어요"

 

 

방송에 최초로 공개된 정한용 부인 미모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 당시에 저정도 미모면 탤런트, 여배우 미모 뺨칠 정도겠네요...

정한용 - "저희 집사람(정한용 부인)은 제가 너무 감사한 게 든든한 후견자로서 제가 하는 일에 반대를 안해요"

정한용 - "(정한용 부인이) 그냥 저를 믿죠. '당신이 해야하면 해야지, 당신의 판단을 믿어요'라고 말해요"

정한용 - "(부부 관계는) 사실 신뢰으 문제라고 생각해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다큐 - 마이웨이' 제작진 - "사모님은 방송에 나오신 적이 없는것 같아요?"

정한용 - "사람들이 자길(정한용 부인) 알아보는 걸 불편해하죠. 마트에 가도 나보고 (떨어져서) 저쪽으로 가서 걸으라고 해요;;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정한용 부인의 뜻을 존중해 아내 모습을 여지껏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정한용.

정한용 - "이젠 (정한용 부인 사진이)방송에 나가도 될거에요. 왜냐면 요즘하고 (옛날 모습이) 다르잖아요"

 

 

정한용 - "(요즘에는) 저희 아내가 '시집을 잘 온 것 같고 너무 행복하다'라고 얘기할때 정말 감사하고 고맙죠"

 

하지만, 정한용과 부인 전혜선 결혼생활에 큰 위기가 닥치게 되는데요.

앞서 정한용이 정치 은퇴를 한 이유는 본인 스스로 정치에 회의가 들어서인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2000년 6월 발생한 정한용 간통사건.

 

정한용은 2000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호텔에서 장모여인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 또한 장 여인의 전남편이 자신을 고소하자 월간지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돈을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 장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됩니다.

 

당시, 정한용은 장모여인과 만난적은 있지만, 성관계를 가진적은 결코 없었다고 간통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실 이상한 점이 많았습니다.

첫번째, 전남편 김씨가 고소를 했는데, 전부인인 장씨는 혐의를 적극적으로 인정을 합니다.

전부인인 장씨가 본인의 죄를 적극적으로 인정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은 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국시민권자인 김씨나 장씨(국적)의 경우는 미국법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국내법으로 이들을 처벌할 수는 없었고, 간통죄가 입증이 되면 정한용만 감옥에 가는 묘한 상황이었죠.

 

두번째, 김씨와 장씨는 미국에서 결혼(2000)을 하기는 했지만, 국내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정 법률 전문가: "간통죄는 국내에만 있다. 따라서 국내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국내 호적등본상 혼인신고가 돼 있어야 한다. (장씨와 김씨의 경우는) 국내법상 부부도 아닌데 어떻게 국내법에만 존재하는 간통혐의를 적용시킬 수 있겠는가. 따라서 간통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정한용을 기소한 검사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기소를 강행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정한용이 억울하다는 점, 또한 '음모론'을 주장한 배경이 되었던 것이죠.

 

간통죄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만은 '정한용 망신주기'가 제대로 이행되었고, 이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한용의 정치적인 생명은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죠.

 

이 사건으로 정한용이 이혼을 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이고, 현재도 정한용 전혜선 부부는 잘 살고 있습니다. 다만 정한용과 부인 전혜선이 마음 고생은 심하게 한 것 같네요.

 

정한용 - "우리 집 거실에 화가가 그린 저와 집사람의 부부 초상화가 있어요. 어느 날(간통죄 고소 사건 후) 집에 들어갔는데, 집사람이 그걸 면도칼로 다 찢어놓았더라고요. 제가 그걸 밤새도록 다시 꿰맸어요."

정한용 - "그때(간통죄 고소 당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집사람에게 사정사정했어요. 나를 믿어달라고, 제발 나를 한번만 믿어달라고..."

 

 

 

 

 

 

정한용 -"제가 결혼을 하고 난 후부터 집과 자동차 등 재산들을 아내의 명의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전 재산이 부인 앞으로 되어 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런 거죠."

 

정한용 - "매달 아내로부터 용돈을 타서 쓰는데, 신용카드로 결재를 하면 사용 내역이 아내에게 문자로 발송이 되죠. 사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우리 집은 벌써 파산했을 거에요."

아마 정한용이 정치를 하면서 큰 돈을 쓴 것과, 후에 간통죄로 고소를 당하면서 부인의 신임을 크게 잃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한용 가족사

 

'인생다큐-마이웨이'방송에서 정한용은 그동안 꾸준히 마음을 쏟아온 장소로 ‘마이웨이’ 제작진을 안내했습니다. 그곳은 미혼모 아이 입양 전문 기관 ‘동방사회복지회’로, 그가 몇 년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늘 화통하고 유쾌해 보이는 정한용에겐 아픈 가족사가 숨겨져 있는데요.

정한용은 첫 아이이자 생후 6개월이었던 딸을 폐렴으로 먼저 떠나 보냈다는 눈물의 고백을 전합니다.

 

정한용 - "지금 아이들이 세명인데, 사실 그 전에 첫 아이를 갓난아기일 때 잃었다. 첫 아이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특히 폐가 약했는데, 결국 폐렴으로 첫 돌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정한용 -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도 울고 아내도 울기만 했다. 아내가 첫째 아이에게 모유수유도 하고 눈도 맞췄는데, 그렇게 떠나보내니 (아내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더라."

특히 첫째 아이였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을 것 같네요.

 

 

정한용 - "나중에 어머니가 아이 유골을 강에다 뿌려주셨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와 아내는 한동안 강변도로를 가지 못했다. 강만 보면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정한용 -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노래 '그대 그리고 나'를 들었는데, 요즘에도 그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정한용 - "가끔씩 살아 있었다면, 그 아이가 몇살 쯤 됐을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래서 자식은 떠나도, 떠나보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정한용 - "첫 딸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앞서 보낸 다른 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들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잊어라 아이는 가슴에 묻는거다'고 말하는데, 예전에 가깝게 지낸 외국 신부님은 다른 말씀을 하시더라."

정한용 - "그 신부님은 '(죽은 아이를) 절대 잊지마라 그 아이는 정말 감사한 존재다. 세상에 이만큼 큰 슬픔이 있다는것을 누가 알겠나. 그런데 그 꼬마가 희생하면서 (정한용과 가족들에게) 사랑과 아픔을 가르쳐 준 거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정한용 -  "이후 첫 아이를 잃고 나서 큰 시련도 이기면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이제는 나쁘게 생각 안 한다. 그 아이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만큼 행복한 것 같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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