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회장 프로필 나이 남편 집 미국 별장(집) 재산 기부 

 

 

<목차>
-이수영 회장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이수영 회장 과거 신문기자가 된 이유, 신문기자 활동 이력
-이수영 회장 기자에 사업가로 변신
-이수영 회장의 통 큰 기부
-이수영 회장 결혼 남편 김창홍 변호사 나이 차이 직업 신혼집 
-이수영 회장 와키남, 미국 별장 위치 가격(시세)

-이수영 회장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이수영 회장은 해방 이전인 1936년 4월생으로 올해 나이 85세입니다. 이수영 회장 고향은 서울시 종로구 제부 동이며,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나 경기 여중과 경기여고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이수영 회장 학력)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수영 가족으로는 남편 김창홍이 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당대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진학할 만큼 총명하고 영특한 인재로, 이수영 회장의 부모님은 그가 아들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길 바라셨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과거 신문기자가 된 이유

 

이수영 회장은 1963년부터 서울신문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수영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의 표지 사진에 경제신문 이수영 기자 모습을 담았을 정도로 기자 시절에 대한 미련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기자가 된 사연이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이수영 회장은 과거 서울대 법대 3년 때 치룬 첫 번째 사법시험에서 떨어져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오랫동안 뒷방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 도시락 2개를 싸서 새벽에 집에서 나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서 온종일 앉아서 공부만 했다. 주로 분리대 중앙도서관 에어 공부했는데... 그렇게 큰 도서관에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남학생들은 거의 속옷 바람으로 공부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은 거의 내가 유일했다"

 

 

 

이수영 회장은 이후 겨우겨우 몸과 마음을 추수려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학원 게시판에서 공고문 하나를 본 뒤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공고문은 다름 아닌 서울신문에서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이었는데요, 이에 그녀는 1963년 서울신문 10기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신문기자 활동 이력

 

하지만 그녀는 당시 따돌림 등으로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자그마한 여기자가 하나 들어와서 고개 빳빳이 들고 편집국을 다니는 내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이수영 회장은 현대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에서 기자생활을 이어가며 고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고 이병철 회장 등 정 재계 인사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기사를 발굴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수영 회장은 신군부 언론탄압 시기인 1980년 서울경제신문에서 해직됐다고 하는데요, 17년간의 기자생활을 마친 그녀는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기자에 사업가로 변신

 

이수영 회장은 아버지가 남긴 통장 2개를 사업 밑천으로 신문기자 시절 안양에 당시 10원 정도 하는 땅을 5000평을 사, 돼지 두 마리와 암컷 한우 세 마리로 목장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수영 회장의 농장은 처음에는 주말농장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1년 세운 광원 목장은 10년 새 돼지 1000마리와 젖소 10마리로 불어났다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은 "살아있는 걸 키우는 게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았다. 기자에서 목축업자로 그렇게 나는 새로운 길로 한발 한발 들어섰다"고 회상했는데요, 그의 사업수완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돼지 과잉 출하로 육류 가격이 폭락할 때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돌려 이익을 남겼으며 우유 과잉 공급 등의 문제가 발생한 우유파동 때는 초등학생 우유 무료 제공 방식으로 판로를 개척해갔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사업은 운"이라며 "다만 운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누구는 붙잡고 누구는 놓치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에게는 운도 따라주었다고 합니다. 처음 장만한 목장 부근으로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이 생기면서 목장터 1만 1400평 가운데 1만 평이 수용돼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됐던 것입니다. 또한 우여곡절 끝에 남자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모래 채취에 손을 댄 이수영 회장은 짧은 기간 꽤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모래도 팔고 소도 파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얼마나 많은 돈이 현장에서 오갔는지 서울법대 동기생이었던 서울신탁은행 돈암동 지점장이 지점의 대리 한 면을 현장으로 보내 입출금 관리를 해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그렇게 소와 모래를 팔면서 큰돈을 벌기 시작, 모았던 돈으로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인수하며 부동산 전문기업 광원산업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수영 회장은 부동산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수영 회장의 통 큰 기부

 

이수영 회장은 지난해 7월 23일 카이스트에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해 화제가 됐었는데요, 당시 이수영 회장의 기부는 지난 2012년(80억여 원)과 2016년(10억여 원) 미국 부동산을 유증한 것에 이은 세 번째 기부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수영 회장이 카이스트에 기부한 총 금액은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고액인 766억 원으로 알려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이수영 회장이 이러한 통 큰 기부를 특별히 카이스트에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기부 이유

 

이수영 회장 : "미국에 건물을 살 때였습니다. 계약서를 쓰는데 변호사가 재산 상속자를 계약서에 써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죽거나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문제가 생길 경우 모두 정부 것이 된다면서 말이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가끔 혼자라는 게 외롭고 무서울 때가 있었고 죽으면 누가 내 묘지를 찾아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이 세상에 철저히 혼자라는 걸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수영 회장 : "사무실을 나오는데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죠. 상속자 이름조차 선뜻 쓸 수 없는 혼자 몸이라는 깨달음이 몸까지 전해진 겁니다. 그때부터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인가 결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사회적 상속자를 정해야 할 때가 된 거죠"

 

이수영 회장 : "그때부터 은밀하게 기부할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부터 기부하게 된다면 대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법대 동창회 일도 오래 관여했고 장학재단 이사장까지 맡았던 만큼 당연히 모교가 먼저 떠올랐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수영 회장 :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이 우리나라에 과학자의 필요성, 과학 발전과 국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내가 일제 강점기를 지낸 사람입니다. 그때 강점이 아직 남아있다. 일본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 카이스트를 키우는 게 곧 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수영 회장 : "1976년도에 정말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관민합동 경제사절단에 수행기자로 유럽과 중동에 갔던 상황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기자들도 해외여행을 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갔다. 사진 기자를 대동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소렌토에 갔던 기억이 나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막 들린 것입니다"

 

이수영 회장 : "뒤를 돌아보니까 일본 여자들이 20-30명이 떼를 지어서 단체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가렸습니다.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국력이 모자란 것이 열등감이었던 상황입니다"

 

 

 

 

 

 

이수영 회장은 남을 돕고자 하는 부모님의 마음씨를 보고 자라 자신도 같은 길을 걷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이수영 회장의 어머니는 6.25 당시 모두가 굶주려 있을 때 감자와 고구마를 된장에 끓여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 깨달음, 기부 계획

 

이수영 회장 : "어린 나이였는데도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준다는 일이 그렇게 흐뭇하고 보람된 것인지 체험으로 배웠습니다. 또 평생 내 가슴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는데, 경기여중에 다닐 때 종로구 내수동 종교교회 장로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수영 회장 : "미국이 한국을 도우러 올 때 배에 구호물품을 잔뜩 싣고 왔다 갈 때는 빈 배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배에는 축복과 은혜가 가득 실려 있다. 그런 축복과 은혜 덕분에 미국 사람들으느 베풀면 베풀수록 부자가 되는 것이다. 대략 이런 말이었습니다."

 

이수영 회장 : "나 역시 내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갈 때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그 손에 축복과 은혜, 감사의 마음이 가득 실려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수영 회장 : "주변에서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배운 것도 많습니다.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모금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생 출신 할머니였습니다. 평생 악착같이 돈을 모은 그는 주변의 소개로 알게 된 내게 5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5억 원이 넘는 큰돈이었죠"

 

이수영 회장 : "본인 말처럼 더럽게 번 돈일 수 있지만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 선뜻 내놓은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기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마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큰돈이 아니어도 힘들게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구경 하면 좋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욕심을 채워도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건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수영 회장은 "앞으로 좀 더 살아야 하니까 그럼 돈이 모아질 것 아니냐. 아직 정리되지 않은 돈도 있다. 기부하고 나서 정말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라고 하며 또 한 번의 기부 계획도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투자를 했던 레들랜즈에 위치한 건물을 또다시 카이스트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 결혼 남편 김창홍 변호사 나이 차이 직업 자녀

 

한편, 이수영 회장의 통 큰 기부가 화제가 되면서 그녀의 극적이고 남다른 결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80년 넘는 시간 동안 독신으로 살아온 이수영 회장은 지난 2018년 81세의 나이에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과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이수영 회장 남편 김창홍 변호사 나이는 1937년생인 84세로, 이수영 회장이 남편보다 1살이 연상이라고 하는데요, 남편 김창홍 변호사는 이수영 회장과 같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과거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법무법인 이데아 소속 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하네요. 

 

두 사람 결혼 당시 이수영 회장은 초혼이었고, 이수영 회장 남편 김창홍 변호사(82)는 결혼 후 상처(전부 인 사망)한 처지였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수영 회장의 남편은 이수영 회장의 첫사랑이라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 : "학창 시절에는 연애도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편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졸업하고 한참 뒤 동창 모임에서 만났죠.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검사장 나갈 나이에 때려치우고 변호사를 했는데 돈 벌 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수영 회장 : "(지금의 남편과 결혼 생활은) 나쁘지 않아요. 혼자 살 때는 잘 때 전깃불 끄는 것도 힘들었는데 불도 꺼주고 잠자리도 봐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이수영 회장은 "작년 9월 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서 계속 누워있으니까 남편이 그 돈 언제 기부할 거냐 라고 물을 정도로 내 결정을 응원해줬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81세의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이수영 회장이나 남편 김창홍 변호사나 두 분 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고로, 이수영 회장 재산은 자녀가 있었어도 자녀에게 주지 않았을 거라고 하며 그건 자식이 망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수영 회장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기에 자녀는 없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 셋을 거둬서 생활도 함께 했지만 다들 연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 신혼집 

 

이수영 회장은 지난 3월 아내의 맛에 출연해 신혼집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이수영 회장 부부의 신혼집은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이었고, 다만 특이한 것은 5대의 대형 냉장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수영 회장 "나는 시간이 없어서 홈쇼핑을 많이 산다. 홈쇼핑을 많이 사는 게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다"라며 냉장고가 많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수영 회장은 옷도, 진주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조차도 전부 다 홈쇼핑에서 구매한다고 하는데요,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하네요. 

 

-이수영 회장 와키남, 미국 별장 위치 가격(시세)

 

이수영 회장은 또 지난 6월 29일 TV조선 와카남에서 3년 만에 설비 공사를 마친 자신 소유의 고층빌딩을 찾기도 하고, 또 미국 LA 팜 데저트에 위치한 개인 별장을 공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수영 회장의 미국 별장이 위치한 곳에는 골프장, 수영장 등이 마련돼 있었는데요, 이수영 회장의 집은 골프장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넓고 깔끔한 규모를 자랑했고, 또한 별장 내부에는 신랑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을 하던 당시 촬영했던 사진까지 걸려 있어 훈훈함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이수영 회장 : "캘리포니아 팜 데저트에 집을 하나 샀는데 그림 같은 집이다. 1년 이상 못 갔다. 1년에 두 번은 가야 한다. 임대를 많이 줘서 돈을 받아야 한다"

 

7월 6일 와카남에서는 오랜만에 LA를 방문한 이수영 회장의 특별하고도 분주한 일상이 그려지는데요, 특히 지난주 방송에서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별장을 포함한 미국 건물들을 팔지 말지 고민인 이수영 회장에게 특별한 해결사가 등장,

 

 

현재 LA 부동산 상황과 손만 대면 가격이 훌쩍 뛰어오르는 이수영 회장이 소유 중인 미국 별장의 현 시세를 전해, 이수영 회장을 웃음 짓게 만들면서, 그 금액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습니다. 

 

이어 기부 여왕 이수영 회장은 자신만의 남다른 기부 비법을 공개한 가운데 이수영 회장이 한국을 넘어 미국 부동산까지 섭렵, 미국 정부를 상대로 월세 받는 건물주가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수영 회장의 LA부동상 투자 비법이 관심을 모았고, 

 

뿐만 아니라 이수영 회장은 가는 곳마다 극진한 VVIP 대접을 받는 모습으로 위엄을 과시, 이어 이수영 회장 통장에 기록된 월세 내역들이 단위부터 남다른 회장님 클래스를 입증,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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