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 나이를 비롯하여, 조용필 전아내 박지숙과 결혼 이유, 그리고 조용필 이혼사유가 궁금하네요.
사실 조용필 인생에서 미스테리가 여러가지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죠.
그리고 조용필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고문 후유증까지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목차
* 조용필 박지숙 결혼의 미스테리
* 조용필 이혼사유
* 조용필 어린 시절과 아버지
* 조용필 노래모음듣기
* 조용필의 무명 시절
* 조용필이 인기를 얻게 된 계기
* 조용필 대마초 사건
* 조용필 고문 후유증으로
가수 조용필은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납니다(조용필 고향 현 경기도 화성시 송상면 쌍정리). 올해 66살이죠(조용필 나이)(조용필 생년월일)
(조용필 종교) 불교
(조용필 키 몸 몸무게 혈액형) 166cm, 56kg, O형
(조용필 학력 학벌) 송산초등학교, 경동중학교, 경동고등학교 졸업
(조용필 프로필 및 경력) 1968년부터 미 8군 무대에서 가수로 활동
1975년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면서 솔로가수로 데뷔
이후 대표곡으로 "바운스", "헬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친구여", "단발머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고추잠자리", "허공", "꿈", "그 겨울의 찻집", "비련", "못 찾겠다 꾀꼬리", "여행을 떠나요"등 수많은 곡들을 남기며, 명실상부하게 '가왕 조용필'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조용필 아내 박지숙 사진
* 조용필 박지숙 결혼의 미스테리
이렇게 한국가요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은 조용필이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몇가지 미스테리한 부분들이 있고, 일반인들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조용필은 자신의 첫번째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조용필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조용필: "(1984년 3월 결혼식때) 나는 그게 결혼식인 줄도 모르고 (결혼식장에) 갔었다."(조용필 전아내 박지숙 첫번째 결혼)(조용필 박지숙 이혼사유)
조용필 부인 박지숙 사진(조용필 결혼식 사진)
* 조용필 이혼사유
당시 조용필 첫번째 결혼식은 경기도 남양주의 봉선사에서 거행된 비밀 결혼식이었습니다. 기자들 몇명 보는 앞에서 신부가 면사포도 쓰지 않고 후다닥 치룬 결혼식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죠.
비밀 결혼식이라면 굳이 기자들을 초대할 필요가 없고, 또한 비밀 결혼식이 아닌 일반 결혼식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결혼식이니까요(조용필 전처(전아내) 박지숙 결혼 사연)(조용필 처 박지숙 뒷이야기)(조용필 이혼사유).
조용필: "(첫번째 아내 박지숙과의 결혼의 실체는) 나중에 내 회고록에 써야 할 내용이다. (그 결혼식을 거부하지 못한 이유는) 그때는 매스컴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조용필은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고 인기를 얻다가, 갑작스럽게 대마초 파동에 휘말리면서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단순한 '쇼'로 치부하는데, 그 실체적인 진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2가지 커다란 미스테리외에도, 조용필이 어떻게 '가왕'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도 무척 궁금하네요.
사실 조용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당시의 시대상과 더불어 조용필의 성격과 어린 시절 개인사를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죠.
조용필 젊은시절 사진
* 조용필 어린 시절과 아버지
조용필: "나는 경기 화성에서 염전업을 하던 집안의 7남매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대 독자로, 고향유지였던 할아버지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화성 최고의 부자였다."(조용필 집안)
조용필: "아버지는 큰형을 데리고 사냥나가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나는 총에 맞아 피 흘리는 동물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잘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성격이 너무 완고하고 권위적이어서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조용필: "사실 음악을 시작하려는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사냥을 나가면, 나는 그 대신에 하모니카를 불고 기타를 치며 방안에서 뒹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못난 놈"이라며 혀를 찼다."
그렇게 조용필은 학창시절에 비틀스와 벤처스에 푹 빠져 살다가, 고등학교 3학년(1968년)때에 가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음악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죠.
* 조용필의 무명 시절
조용필: "처음 가출할 당시만 해도 평생 음악을 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 못했다. 우리는 비틀스 세대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건 해야 했을 뿐이다."
이후 조용필은 미8군 클럽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조용필이 가수부터 시작했다고 아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그의 첫걸음은 기타리스트였음.)
이 1968년부터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던 기간 동안, 조용필은 철저하게 무명 가수(겸 무명 음악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당시에 큰 사건으로 당시 밴드의 보컬이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기타리스트였던 조용필이 가수로 전향하게 된 사건과 1973년 조용필이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했던 사건들이 있었죠(조용필 군대).
조용필 리즈시절 사진
* 조용필이 인기를 얻게 된 계기
그리고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조용필: "살다보면 전혀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게는 75년이 그랬다. 그해 첫 독집앨범을 내던 당시에 구색맞추기로 끼워넣은 노래 한곡이 대한민국 전역을 휩쓴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당시까지 로커로 자부하고 있던 내가 트로트 한곡으로 졸지에 '스타'가 된 것이다."
사실 닫시 부산은 재일교포들의 고향 방문단이 대대적으로 입국하던 장소였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속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조용필 과거 사진
* 조용필 대마초 사건
하지만 불과 8~9개월 후에 조용필은 대마초 파동에 휩쓸리게 됩니다.
조용필: "1975년 겨울, 저녁 무대 한타임을 끝내고 나오다 사복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남산 마약반이었다. 거기서 무조건 (마약쟁이) 50명씩 불어야 했다. 주전자 고문도 치가 떨리지만, (더 가혹했던 것은) 붙들려가자마자 한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벽돌 사이로 밀어넣고는 무시무시한 각목으로 사정없이 찔러댔던 고문이었다."
조용필: "거기에는 인간이 없었다. 그렇게 당한 많은 음악인들이 좌절했고, 한대수, 이장희 같은 사람은 아예 이 땅을 떠났다."
그렇다면 조용필이 정말로 죄(?)를 지은 걸까요?
조용필: "억울했다. 당시 흔하게 유통되던 대마초는 불법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내가 대마초를 피운 건 파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사실 1969년 의정부 기지촌에서 '파이브핑거'로 활동할 당시에, 4차례 대마초를 피운 적이 있었다."
조용필: "같은 하숙집에 살던 미군 병사가 담배라며 '풍년초' 같은 봉지를 건네주어 신문지에 말아피우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후 두세차례 더 대마초를 피웠으나 얼굴에 종기같은 것이 돌고, 나중에는 고름까지 나와 대마초를 끊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참작이 되지 않았다."
* 조용필 고문 후유증으로
결국 조용필은 대마초 가수라는 공격을 받게 되고, 1977년 자의반 타의반 은퇴하게 됩니다.
조용필: "견딜 수가 없었다. 5월 4일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쇼'를 가진 그날 밤, 밤새 술을 퍼마시면서 울었다."
즉, 조용필은 대마초 관련하여 고문을 심하게 받았고, 그 상처는 스스로 음악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라면 고문 후유증으로 스스로 방송 생활을 접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실제로 조용필의 증언처럼, 한대수, 이장희 등 상처받은 무수히 많은 음악인들이 한국을 떠납니다.
(1970년대, 80년대 수많은 예술가들이 미국 이민을 택한데는, 이런 시대적인 배경도 있었음)
사실 당시 대마초는 '입법 미비'로 명백한 불법이 아니었습니다(입법 미비).
하지만 박정희 독재 정권은 '자유분방한 예술인'들을 길들이기 위하여, 무자비하게 탄압을 했죠.
이때의 사건을 대마초 파동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국정교과서 사건'을 보면 '역사 파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용필에게 주전자 고문과 각목 고문을 자행했던 박정희 정권이나,
전세계 선진국 및 중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국정교과서를 시행하려는 박근혜 정권은 판박이가 아닌가 하네요.
(참고로 국정교과서는 북한과 몽골 등 전세계 최후진국 몇몇 국가에서만 시행하고 있음)
그런데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의 길이 끊긴 조용필은 어떻게 했을까요?
실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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