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겸 영화배우 나문희 중국 화교 루머와 나문희 젊은시절, 그리고 나문희 나혜석 관계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나문희는 요란하지 않게 조용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스타일인데, 가끔씩 아주 솔직한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 목차
* 나문희 나혜석의 관계
* 나문희 화교 루머는
* 나문희 성우 데뷔 초기에
* 나문희 연기자로 전업하면서
* 나문희의 가치관
탤런트 나문희(본명 나경자)는 1941년 11월 30일 중국 북경(베이징)에서 태어납니다(나문희 고향 북경). 올해 75살이죠(나문희 나이).
(나문희 국적) 한국
(나문희 학력 학벌) 서울 창덕여자 고등학교 졸업
(나문희 프로필 및 경력)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데뷔
원래 성우로 활동하다가 TV드라마 붐이 일어나면서 1975년 드라마 여고동창생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전업하게 됩니다.
이후 드라마 엄마 아빠 좋아, 사랑과 진실, 제2공화국, 걸어서 하늘까지, 살다보면, 압구정 종갓집, 장밋빛 인생, 거침없이 하이킥, 빠담빠담, 왕가네 식구들, 기분 좋은 날 등 수많은 작품들에 출연합니다.
또한, 영화 조용한 가족, 굳세어라 금순아, 너는 내 운명, 화려한 휴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수상한 그녀 등에도 출연합니다.
탤런트 나문희 사진
* 나문희 나혜석의 관계
나문희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의 집안 손녀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나혜석이 나문희의 고모 할머니임)(나문희 나혜석 관계)
(나혜석은 1896년에 태어나 유화를 전공했으며,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투고했고,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합니다.
당시 이혼을 터부시하는 사회 관습에 맞서다가 생애 말년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나문희: "제가 중국에서 태어났어요. 옛날(일제강점기때)에는 사람들이 중국으로 많이들 갔어요. 나혜석(서양화가)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의 고모 되시는데, 그 집안이 중국에서 공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조카인 우리 아버지도 거기로 이주했고, 거기서 제가 태어났고요. 그러다가 다섯살 때 우리나라로 귀국했어요."(나문희 집안 중국)(나문희 중국 출신)
여류화가 나혜석 사진
* 나문희 화교 루머는
참고로 나문희 화교 루머가 있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무근입니다.
나문희: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서 오락 부장을 도맡아 했어요. 학교에 연극반이나 반송반이 없어서 아쉬웠죠."
나문희: "어려서부터 소꿉장난같은 건 하지 않고, 담요를 뒤에 걸어 무대를 만들어서 놀았어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친구들 반응보다 그냥 내가 좋아서, 노래하고 춤추고 놀았죠."
나문희가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던 것 같네요.
나문희: "어릴 때 우리집이 굉장히 가난했어요. 아버지가 무능하신 것이 부끄럽고, 또 어떻게 하면 좀 편안히 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런 고민을 친구들과 의논하거나 하소연하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저를 보는 선생님들은 그냥 명랑하고 좋은 학생이라고만 여기셨죠."
나문희가 십대때부터 '어떻게 하면 좀 편안히 사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과,
나문희가 자신의 과거에 굉장히 솔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네요.
보통 십대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고백을 하지는 않죠.
나문희 젊은시절 사진(나문희 젊었을 때 사진 - 나문희가 김혜자, 윤여정, 김윤경, 고 남정임과 함께 찍은 사진. 맨 가운데가 나문희임)
* 나문희 성우 데뷔 초기에
나문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예술학원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당시 제일 잘나가던 연출가 김경옥 선생, 문화방송 초대 사장 최창봉 선생, 배우 최상현 선생 세분이 연기론을 지도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스타니슬라프스키도 처음 들어봤는데, 잠깐의 그 배움이 제 평생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다음에 1961년에 문화방송(MBC)의 성우 모집에 학원 친구와 같이 응시했어요."
나문희: "MBC 성우로 활동하면서도 나는 집이 어려워서 성우 일이 끝나고 나면 뮤직홀(찻집 겸 음악감상실)에 가서 디스크자키(DJ)를 했어요. 원래는 초급대학 졸업한 DJ를 찾았는데, 대학 문턱도 안 가본 제가 다행히 일할 수 있었어요."
나문희: "당시 저는 음악도 학교에서 배운 가곡이 전부였는데, 오후 DJ를 맡았던 동아방송 아나운서가 만들어놓은 노트를 보고, 드보르작이니 베토벤을 따라서 음악을 틀었죠. 당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뮤직홀에서 음악을 틀고 음악 책도 읽다보니 공부가 많이 됐어요."
성우일을 하면서 DJ로도 활동했다니, 다른 사람들보다 2배의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나문희가 좋은 기회를 잘 활용했네요.
나문희 과거사진
* 나문희 연기자로 전업하면서
나문희는 성우 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냅니다. 당시 '주말의 영화' 등의 외화 더빙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TV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면서, 연기자들이 크게 부족해집니다.
나문희: "저는 성우일을 하면서 연기를 배웠어요. 성우도 배역에 맞게 감정에 맞는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사실 내가 뮤직홀에서 DJ하면서 음악공부하고, 또 성우로 더빙하면서 연기하고... 나는 방송국 들어간 다음부터 모든 연기공부를 한 것 같아요."
나문희: "(TV드라마에서) 탤런트들은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새로 투입된) 성우들은 (기존)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다방 마담이나 술집 주인,가정부, 동네 아줌마 같은 역을 맡았어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나문희: "비록 작은 역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소화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사실 '저 역할은 내가 하면 좋겠다'며 당시 주연 배우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저 배우가 나보다 더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라면서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어요."
사실 나문희보다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성우 출신 배우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끝내 좌절하고 말았죠.
* 나문희의 가치관
실제로 나문희는 가정부나 동네 아줌마 같은 비중 작은 역할이나, 술집 마담이나 다방 주인 같은 이미지가 안 좋은 역할을 하다가 1995년 '바람은 불어도'에서 일약 두각을 나타내면서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이렇게 빛이 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문희: "제가 뒤늦게 철이 드는지, 나이 들수록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게 되네요. 가급적이면 시간 약속을 어기지 않고, 또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죠."
실제로 나문희는 대본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한다는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것은 연예계에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평소에 이런 꾸준한 노력이 오늘날의 그녀를 만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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